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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온도/리뷰: 읽은 책에 대한 솔직한 감상과 생각

『노르웨이의 숲』 서평- 상실감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부제: 상실의 시대)

by 에그치즈토스트🥚🧀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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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제목만 보고서는 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이 책 제목은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서 따온 것으로 이 곡이 가진 쓸쓸하고 공허한 정서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청춘과 상실,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의 감정들이 마치 노래 가사처럼 반복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주인공 나오코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기도 하죠. 이 책이 1987년 발부되었으니 2025년 기준 40년 가까이 된 책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일본에서만 4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도서 중 하나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시간이 흘러도 이 책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하루키 특유의 솔직하고 직접적인 서술방식, 그리고 감정과 육체, 정신 사이의 복잡한 경계를 담백하게 풀어내는 표현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주인공 와타나베를 지나치게 성적인 인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작가가 인간 내면의 공허함과 욕망을 꾸밈없이 보여주려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디 댓글에서 본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주인공 와타나베는 거의 섹스머신이라 부르더군요. 미도리는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야한 농담을 아주 주구장창 해댑니다. 이 정도만 들어도 아직 읽어보지 않는 사람도 책의 두께를 보고 피했다가도 '한번 읽어볼까?' 란 생각을 들게 해 줄지도 모르는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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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그래서 이 책이 단순히 "조금 야한 소설" 정도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 많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젊은 시절에 마주하는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리고 우정과 욕망 그리고 상실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맨살을 다 드러내며 아주 솔직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책입니다.
 
 
 작가 하루키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자살'이라는 주제를 아주 자연스럽게 들고 옵니다. 여기서부터 충격적입니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절친인 기즈키가 17세 때 자신의 집 차고에서 N360 차량의 배기가스를 흡입하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의 인생을 뒤틀어버리는 큰 균열의 죽음이었고, 이후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언어와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 상실의 여진이 잔잔하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출처: YES24

 
 
 기즈키의 자살이 영향을 준 건, 그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 그 사이에 같이 어울려 놀았던 학창 시절의 와타나베였습니다. 그의 죽음을 공유로 한 그 둘의 관계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둘은 자연스러운 죄책감과 연민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둘만의 책임감과 연대감이 복잡 미묘하게 섞여버립니다. 둘은 사랑을 나누고, 서로가 이어질 것도 같았지만 결국 나오코가 스스로 기즈키를 따라가기로 선택한 이후, 단순한 애정의 서사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무게감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한 세대가 안고 있는 불안과 결핍처럼 그려냅니다.
 
 이런 내용이 더욱 와닿는 건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질 만큼 흔히 벌어지는 이러한 사건들이 주는 메세지가 현실적으로도 '사회가 주는 엄청난 무게감으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다시금 주변인을 돌아볼 여지를 줍니다.
 

Norwegian wood_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면: 와타나베와 나오코

 
 한편, 미도리는 나오코와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미도리는 '삶에 대한 집착이 있는 인물''죽음과 함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나오코와는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인물이 바로 미도리거든요. 나오코가 기즈키의 죽음과 함께 그 시간에 멈춰버린 듯 아무도 닿지 않는 깊은 요양원에서 살아간 것에 비해 둘 다 상실을 경험했지만, 한 사람은 그것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안에 머무르기를 선택합니다. 와타나베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며, 결국 자신이 어떤 삶을 택해야 할지를 함께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죽음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저항했던 미도리는 그러한 '상실의 그림자'에서 도망치려고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로 유쾌하고 솔직한 매력이, 오히려 때론 과해서 와타나베 입장에선 야한 농담만 하는 감정적이고 가벼운 캐릭터라고 언뜻 보이기 쉽지만, 실제론 그녀 역시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미도리와의 관계는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기즈키의 죽음으로 공유되면서 엮여버린 그의 인생이, 간신히 생명의 힘을 느끼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어쩌면 와타나베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그녀가 유일한 생명의 동아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삶의 당연한 것을 우리는 고통의 연장 속에서 각자의 몫만큼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이 잔인할 만큼 냉정한 진실이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문장들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다르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제각기 다릅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서 괴로워합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롭게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관계를 여전히 못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와타나베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과 함께 널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미도리는 묻습니다.
 

"너, 지금 어디야?"

 
미도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심된 와타나베는 동시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에 대해서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그가 서 있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가 정말로 서 있던 곳,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대답하지 못하며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연애소설이나, 야한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섬세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상실의 터널을 통과한 다음, 다시 삶을 택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런 결정을 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런 결정을 해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책은 40년이 지나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또 읽히게 될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입니다. 자신을 동정하기에만 빠지는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암시하는 주인공을 향한 한 선배의 충고처럼,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 자신을 동정하는 것만큼 그곳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건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부딪치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지금도 꾸준히 회자되는 청춘문학이자 일본 현대문학의 고전입니다.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담으로 이 책이 대한민국에서 발행되었을 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소개되었는데요. 작품 속에는 '죽음'을 둘러싼 상실감이 남은 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내용이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섬세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시대'라는 표현을 제목에 담은 걸 보면 이 작품이 단순히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당시 젊은 세대가 마주한 사회적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분위기까지도 담아내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작가 하루키는 이 제목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바뀐 제목이 오히려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해 준 듯합니다.
 

“여러분은 일상에서 어떻게 마음의 무게를 다루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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